숨겨진 장사상륙작전 이야기

사실은 잘 몰랐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하여는 그동안 수 없이 듣고 살아 왔지만 장사상륙작전이라는 것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지요..

그러다가 1995년 군대 입대후 50사단 121연대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장사상륙작전에 대하여 알게 되었답니다. 처음에는 울진군 기남면 사동리에서 군생활을 하다가 1년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위치한 소초에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때 생활 한 곳이 바로 장사상륙작전이 있었던 장사리였습니다.

2017년 군 전역 후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답니다. 그래서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이 곳을 방문하게 되었네요..

장사상륙작선은 6.25전쟁 교착상태 타개를 위한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선을 성공하기 위한 양동작전으로 실제 상륙지역인 서해안 인천의 반대편에 있는 동해안 장사리에 기습 상륙을 감행 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상륙지역을 오판하도록 하여 경인지역을 병력증원을 방지하고자 진행하였던 것이였습니다.

또한 북한군 수뇌부와 적들의 주의를 동해안 지역으로 집중시키고, 아울러 낙동강전선에서 방어중이던 국군 제3사단이 포항 남쪽에서 반격을 개시할 때 적의 후방을 교란하여 적의 진로를 차단하여 아군의 전진로를 개척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답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진행되었는데요. 장사상륙작전은 그보다 하루 전인 9월14일 새벽 4시30분 펼쳐졌답니다.

장사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1950년 8월 24일 대구, 밀양에서 772명 대원을 모집하였는데 대부분 학생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8월27일 육군본부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를 창설하여 8월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밀양에서 훈련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9월10일 육군작전명령 제174호 출동명령이 하달되어 9월13일 오전 출정식이 열렸습니다. 출정식은 부산부두에서 열렸는데 당시 정일권 육군참모총장, 신성모 국방부장관이 참석을 하였답니다.

9월 13일 오후2시 LST문산호는 부산항을 출발하여 익일 14일 새벽 4시30분 장사해안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당일 오후2시50분에 상륙에 성공을 하여 적군 주 보급로인 포항 영천방면 국도를 완전차단하였으며 적군후방 활동을 마비를 지켰답니다.

이 전투로 인하여 139명 전사 92명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그외에는 모두 행방불명되었다고 합니다.

미군 군사전문가들조차 성공확률 ‘5,000분의1’로 점치며 만류했던 20세기 마지막 상륙작전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케 만든 장사상륙작전은 경주,부산을 사수하고 서울을 수복하는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였습니다.

장사상륙작전 기념비에 있는 참전용사 명단을 보니 다시 한번 숙연해집니다. 이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분들을 기르기 위한 문산호가 지금 몇가지 문제로 인하여 1년 8개월간 방치되고 있는데 빠른 시일내에 준공 및 개방을 하여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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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과 함께 세상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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